4. 리 후이 Li Hui <탈바꿈change> 2006 스테엔레스 강철 및 나무 600*220*300 cm

비주얼 아트의 연장선이 설치물로 발현한 작품이 <탈바꿈>이다. 나룻배의 파편은 허공에 흩어지고, 본래적 모습으로서의 항공모함이 등장한다. 시공간은 여기서 멈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비디오 게임의 한 순간처럼. 관객은 작품 주위를 180도 돌면서, (계단을 올라가서 작품을 바라보면 360도 또한 가능하다.) 순간(시간의 정지)을 여기서(공간의 유한성) 포착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공간적으로 일시정지 미술 조각을 그는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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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란거리 중심의 예술이 여기에 있다. R.Serra 의 <Splash>가 시간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노출했다면, 리 후이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탈바꿈>에서 시간은 순간! 정지한다. 파편이 날아가는 그 순간에 시간은 영화 <매트릭스 Matrix>의 그 장면처럼 정지한다. '절대로 정지할 수 없는' 시간이 <탈바꿈>에서는 멈춰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욱 환상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Non Process” 가 자리하는 그곳의 의미는 환상과 상상 사이의 줄다리기이다. 현실에서 벗어나서 벌어질 수 있는 일, 그것은 여기서 “시간의 순간 멈춤”으로 변환한다.

내용을 살펴보자. 나무로 형상화된 (옛) 나룻배가, 은색의 단단한 항공모함으로 변화한다. 겉모습은 과거였지만, 그 속은 현대(혹은 미래)이다. 그리고 그 본질이 지금 여기서는 벗어나는 ‘순간’이다. 나룻배는 하강하는 이미지이다. 무언가 추락과 낙하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린다. 과거의 것, 옛 것은 오늘날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이는 현대 자본 주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생하는 중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나룻배는 껍데기를 벗는다. 현대 기술 문명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항공모함으로 ‘탈바꿈’한다. 어쩌면, 항공모함으로 완전히 탈바꿈 이 후에, 이 배는 다시금 부상할 지도 모르겠다. 현대 기술 사회에서의 중국 문명의 현재를 이렇게 리 후이는 메타포적으로 제시한다. 그는 단지 지금의 모습을 포착하여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순간 정지”의 모습이었고, 그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5. Pulpo <광상기 Imachine> 2006 혼합매체, 설치

 

이러한 메타포적 의미는 pulpo의 작품 에서도 이어진다. Pulpo의 <광상기 imachine>는 먼저, 영상이미지를 미술관 3개의 벽에서 재생한다. 미술관의 벽은 그 자체로 영화관의 스크린이자. 예술작품의 미술전시공간이다. 대중적 장르로서의 영화와 고급 문화로서의 미술의 구분이 여기서 순간 사라진다.

팝아트적 속성이 역기서 드러난다. 앤드워홀A.Worhol은 관능성의 화신으로서의 마릴린 먼로의 매력은 날아가고 기본적 흔적만 남은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Marlin Dyptich>에서 구현한다.

<imachine> 또한 탱크, 게임, 총 등의 이미지와 이를 지시하는 단어로 작품을 구성한다. 전쟁과 싸움, 갈등의 속성을 대변하는 위의 사물들은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게임처럼 형상화돼있다. 최근 유명 슈팅 게임 <아바Avar>. <써든어택SuddenAttack> 의 화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형형색색의 표적은 탱크, 총 등의 공격무기를 배경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속도는 MTV의 뮤직비디오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0.1초의 속도로 화려하고, 현란하게 관람자의 시각을 현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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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형형색색은 단지 겉포장일 뿐이다. 실제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현대전쟁이 마치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변화한다는 점일 테다.

실제로도 필자가 미군과 함께 군복무를 하고 있을 적 <imachine>속 이미지를 실제 전투 장면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미군 장교가 자신이 이라크에서 직접 겪은 영상이라며 (자랑하듯이 우쭐하여) 무언가를 보여줬다. 적외선 카메라에 의해, 적이 움직이는 동선이 확실하게 보였고, 화면 한 켠에는 그 지역 전체를 조망하는 지도가 있었으며, 표적이 적군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따다다다~” 총알이 허공을 가르는 모습이 보이고, 적군은 이 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컴퓨터 게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미 현대전은 컴퓨터 그래픽의 한 장면처럼 변화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포착하려 했는지 모른다.

 

작가는 또한 이를 중국 전통과도 연관 지으려 시도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초나라와 한나라의 장기판 속 알을 <imachine> 영상 이미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장기 알은 총의 과녁으로 변화한다. 그것은 과거의 전쟁과 현대의 그것의 차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사람의 목숨을 마치 컴퓨터 게임 아바타의 그것처럼 여기는 현대전의 모습이 그것이다. 컴퓨터 게임 속의 적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서 나를 공격 하지만, 실제 세계의 사람 목숨은 총알 하나로 끝장이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교조적이고 단순하며 직설적이다. 비유하거나 빗대는 태도 자체가 1차적 성격이 강하다. 가르치려 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려고만 한다. 그 태도는 필자에게는 불편했다. 조금 더 무언가 살짝 빗겨가는 무언가를 자못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 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중국 문화적 토양이 그 이유도 있으리라고 필자는 파악한다.

  

3. 마오 샤오춘 Miao Xiaochun <사이버 공간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ement in Cyberspace> 2006 사진 C-Print 418X360 CM

발테 벤야민은 W.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 ……결과적으로 넓은 시각의 세계뿐만 아니라 청각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 지각의 심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이유도 그것이 훨씬 더 용이하게 준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은 영화 구성요소들을 따로따로 분리하여 다양하게 분석가능한 틀을 제공한다. 이러한 영화 매체의 특징은 관객들이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은 편집의 기능을 뛰어 넘어, 영화 매체가 가지는 기술적 특징의 총아를 드러낸다. 일상에서 테크놀로지 기술에의 의존도가 강해지면서, 태생적으로 기술에 의존했던 영화 역시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분명 대중적 예술 장르로서의 사진, 영화 뿐 만 아니라 순수 미술에서도 접고 넘어갈 수 없는 주요 아킬레스이기도 하다. 마오 샤오춘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발터 벤야민의 논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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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비디오와 포토그래피라는 매체를 디지털이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제작한 초대형(720cm x 244cm) 작품이다.

부유의 첫 전시장 입구에 이 작품이 걸렸다는 의미는 부유가 담고자 하는 contemporary적 속성을 제시한다. 현대 예술은 기술과의 소통을 어떻게 담고자 하는지 고민한다. 이에 대한고민의 흔적을 관객은 <사이버 공간 최후의 심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유 샤오춘의 작품은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로서의 테크놀로지를 적극 도입한 대표적 예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모델로 해서 컴퓨터 그래픽(이하 CG)로 합성한 400여 개의 다양한 포즈의 입체모형을 만든다. 이는 미켈란제로의 신화적인 거대한 우주공간 구도를 인용한 흔적이기도 하다. 이 작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세 사람의 조수와 함께 6개월 동안 작업했다고 하니, 어쩌면 디지털 기술의 편의성은 잘못 전해진 낭설인지도 모르겠다.

 

미아오 샤오춘 Miao Xiaochun은 서양 미술사와 종교적 주제를 현대 문맥에서 재해석한다. 시스틴 성당의 광활하고 거대한 천장 벽화를 그는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한다. 오로지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완성된 그의 사진은 원작의 숨겨진 부분까지 자세히 통찰한다. 검은색과 하얀색 그림, 마이오의 이 작품은  은색으로 가득하다.

 

Other works include computer graphics installations such as The Last Judgement in Cyberspace, a 3D monochrome reworking of Michelangelos's the last Judgement from the Sistine Chapel replacing every figure with a virtual model of Miao himself.

 

중세시대의 시스틴 성당 아래에 서 있던 어느 관객은 천장 벽화를 보면서 종교적 우월함을 느끼며 전율하였다. 마오는 이를 현대적 방법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술적 차워에서의 디지털 포토그래피를 도입한다. 디지털 포토그래피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티를 뛰어넘어 가상세계의 권위적 특성에 기댄다.  가상세계의 권위적 특성은 미래적 가치를 함유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오늘날 어느 관객은 <사이버 공간 최후의 심판>를 보면서, 비디오 게임의 스크린샷을 떠올린다. 마오의 이미지는 관람자로 하여금 과거의 “신”마저도 아바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려 한다. 어쩌면, 컴퓨터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이미 신인지도 모른다. 나의 분신으로서 아바타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아바타(들) 사이의 관계맺음은 온라인 공간 내에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의 사건을 객관화시키는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재구성한 <사이버 공간 최후의 심판>을 통해 동시대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자문하도록 한다.



  

2. 미술작품을 읽는 눈 : 파노프스키의 도상학/도상해석학

 

파노프스키의 견해를 따르자면, 미술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대뇌 피질 속에 부유하는 알고 있는 무언가와 눈으로 들어오는 예술 작품의 그것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사실 인지적”이고 “감정 확인적” 과정이다. 이는 누구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범주이다.

두 번째는, 관습적인 주제나 이전의 예술 작품, 사회적 함의(알레고리, 메타포) 등을 통해 그 예술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도상학”이 있다. 예를 들어, “stations of cross"라 하면, 예수의 10가지 순환적 고난의 과정을 의미한다. 중세미술에서 보여주는 <stations of the cross> 작품‘들’과, B. Newman의 <stations of the cross>에서 이를 표현한 구체적 예를 살펴보고, 비교, 대조하는 작업이 ”도상학“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도상학적 해석을 뛰어넘어, 예술작품의 ‘본래 의미’를 찾아보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도상해석학이라 부른다.

 

이 일련의 과정의 순환 내에서, <부유>傳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때로는 1의 계단을 걷다가도, 3의 단계로 훌쩍 뛰어 넘기도 하고, 2의 계단에서 잠시 쉬기도 하는 자유로운 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 팝아트의 영향을 받는 유럽 예술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
A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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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 Dine`s Garbage Pail>

대량생산소비체제의 과잉 소비가 낳은 수많은 쓰레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과잉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고발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생각만큼 별로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서독, R. Richter
팝아트를 창조적으로 받아들여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업적을 낳은 인물이다.

소셜리스트 리얼리즘으로 사실적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를 보고서, 자신의 예전 작품을 모두 파괴시킨다.  그리고 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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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le loogy>


친근한 가족 사진을 확대 복사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사용, 이미지를 복사), 이미지 위에 회색물감을 얇게 칠한다. 그리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붓으로 쓸어내린다.(자기부정)

그러면, 희미하고, 어릿어릿하고, 불투명하고, 애매모호한 작품이 남는다.

Richter 왈
“엽서를 복사하는 것처럼,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으로도 하나의 그림을 만들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자유.....”

기존의 관례적인 미술의 어법을 다 버리는 작업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적 해방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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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Duchamp이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데 비해, Richter은 아무것도 한게 없다. 이는 팝의 해방적인 효과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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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lor chart>


색과 면은 마치 모더니즘 추상을 연상시킨다.  페인트 집에서 볼 수 있는 색상표와도 같다. 실제로도 색상표가 달려 있는 산업용 페인트를 가지고 그렸다.
 
이는 팝과 모더니즘의 결합시킬 수 있는 오묘한 길을 개척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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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ben mit Pop>

고급 가구점의 상품을 하얀 좌대 위에 조각상 처럼 올려놓고, 미술가들 역시 팔리기 위한 상품들 사이에 올라가 있다.

아티스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라는 깨달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특히 팝아트의 특징은 작가들은 간판 스타일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워홀 - 마릴린
리히텐슈타인 - 만화
올덴버스 - 소프트스컵쳐 등

이를 통해 우리는 미술가는 결국 ‘나이키 상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의 작가 자신은 간판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계속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다.

결론

팝은 모더니즘의 초월적이고 미적인 공간의 벽을 뚫고 미술을 현실세계 속으로 끌고 나온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상품화, 상업주의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위치 또는 역할에 대한 의문, 문제를 안게되었다고 할 수 있다.

  
A. War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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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bel Soup C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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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lin Dyptich>


매혹과 저항
왼쪽 마릴린 이미지는 마릴린 먼로의 전성기 <나이아가라>에 등장했던 마릴린이다.
하이퀄리티이미지를 몇가지 색으로만 복제 하였다.
이는 관능성의 화신으로서의 마릴린 먼로의 매력은 날아가고 기본적 흔적만 남은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이다.

오른쪽 마릴린 이미지는 마릴린 먼로를 흑백처리했다. 점점 빛이 바래져간다.
이는 현존, 존재 사이의 변증법, 삶과 죽음의 변증법, 아름답고 관능적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것만 같았던, 행복과 안락에 안길 것만 같았던 것 사이의 변증법을 말한다.

산업의 논리에 의해 지배, 관리되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산업논리의 어두음과 그늘에 더욱 관심을 둔다.
 (자살, 재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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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ic chair> : 죽음과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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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mingham Race Riot>


그는 정치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도했다.
버밍햄에서 인종차별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과잉진압하여 유혈폭동으로 번지는 사건 발생했는데, 그는 이를 미술작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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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wanted>

당시 미국에서 수배당하고 있는 흉악 범죄자 13명의 사진을 경기장에 걸어놨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의회의 반대로 철회 당하고 만다.

이 후, 그림 안에서 문제가 될 만한 이슈를 그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Marlin> <flower> 후원자를 미화하는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면서 확보한 안정적 자본을 실험영화에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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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hol 1963 - sleep>

6시간동안 주인공이 자는 모습. 시간적 공간적 완전 리얼리즘을 그는 추구했다.

성적인 영화를 다루기도 했다.


<red couch> <blowjob>이 그것이다.

R. Licht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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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aybe>

시각적으로 즐겁고, 어렵지 않고, 무난하기 때문에 금방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C. Oldenburg
유머러스하고, 환상적이고, 사람들에게 친근한 작품으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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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 soft fan>

The year of 1964

카스텔 리가 키운 팝미술가들이 유럽에서 쇼케이스를 했다. 이는 폭발적 인기를 형성했다.

G. Segal

팝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면모를 조각에서 잘 실현했다.
그는 유럽에서 큰 각광을 받았는데, 유럽은 예부터 리얼리즘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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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작업과정을 살펴보자.
모델에게 일상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고 -> 그 모습을 석고로 뜬다 -> 석고 자체를 가구, 건축 적 환경 안에 배치한다.

그래서, Segal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라 말한다.

- 석고를 가지고 뜬 인물상
- 인물상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 : 훨씬 생명감 있고, 강력함. 산업적으로 생산된 제품(비개성적, 인격이 없음, 비개성적)

=> 이는 비인격적, 비개성적 산업적 형태와 인간적 형태가 결합한 새로운 유형이다.
그러나, 인물상은 하얀 석고로만 표현되면서, 주변환경에 비해 빈약해 보인다. 이는 곧, 인간은 주체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간상은 속이 비어있다. 이는 현대문명 속에서 실체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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